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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신문 인터뷰 기사내용
글쓴이 태을양생 날짜 2012.06.16 13:38 조회 수 3418
[인터뷰通] 허담 태을양생한의원 원장
티베트·터키… 조선 약초교역루트 누비며 약초연구 20년    
  
  
허담 원장은 2002년 한약재 생산 회사인 옴니허브를 설립한 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500여 종의 한약재와 70여 종의 한방차를 생산하고 있는 옴니허브는 매출 200억원을 자랑하는 한방산업 선도기업이다.  
  
허담 원장의 약초 기행은 1995년 시작됐다. 그의 약초 기행은 국내 뿐 아니라 몽골`티베트`러시아`카자흐스탄`인도`터키까지 이어지고 있다.  

흔히 인생은 길에 비유된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보통 평평하고 곧은 길을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험한 길을 가며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길을 만드는 사람도 드물게 있다. 허담(52) 태을양생한의원 원장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한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메리트를 포기하고 약초 연구에 인생을 걸었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한약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그의 약초 연구는 어느 덧 2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허 원장은 한의학계에서 약초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걷고 있는 길은 대로(大路)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며 남을 위해 무엇을 남기려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허 원장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일주일에 두번(화`토요일)만 진료를 하고 약초 연구를 위해 출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진료가 있는 날, 허 원장을 방문해 군자 대로행(君子 大路行) 같은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약초 찾아 삼만리

허 원장의 약초 기행은 1995년 시작됐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3일(월`화`수요일)만 진료를 하고 약초 연구를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러다 약초 사랑이 더 깊어졌다. 2000년 들어 진료 일수를 하루 더 줄였다. 그의 관심이 돈이 아니라 딴 곳에 있음을 의미한다. 허 원장에게 한의원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약초 연구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한의원은 약초 기행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임상에 접목시키는 일종의 연구소인 셈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 한의원을 개원했습니다. 개원한 지 26년이 되다 보니 단골이 많아 매일 진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여건입니다. 진료 일수가 많지 않아 한의원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만 얻고 있습니다.”

허 원장은 왜 편한 길을 놔두고 돈 안 되는 약초 연구에 매달리게 되었을까. “한의원을 개업하고 환자를 진료하면서 대학에서 문헌으로 배운 것과 실제로 사용하는 약초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중국 의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거나 귀한 약재를 구하지 못해 대체 약재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 등으로 인해 잘못된 약초가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잘 치료하고 있는지, 치료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약재는 안심하고 처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죠.” 그는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약초 기행을 시작했다.

허 원장은 1995년 대학 동기(경희대 한의예과 80학번)인 어윤형 한밝한의원 원장, 전창선 약산한의원 원장과 함께 본초학 연구소인 ‘고정제’를 만든 뒤 전국을 누비며 약초의 기원과 생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약초꾼을 따라 우리나라 산이라는 산은 모조리 넘었다. 전국의 약초 산지와 시골 장터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약초의 유통 실태도 살펴 봤다.

허 원장은 약초가 있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찾아 다녔다. 그의 약초 기행은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와 남방약재의 보고로 알려진 베트남`라오스 등 동남아시아를 너머 몽골`티베트`러시아`카자흐스탄`인도`터키까지 이어졌다. 특히 약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은 23개 성을 모조리 훑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 타고 만 하루를 달려 겨우 약초 한 가지만 보고 오는 일도 있었지만 그의 약초 사랑은 식을 줄 모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허 원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제가 약초 기행을 다녀 온 지역은 모두 조선과 약재 교역을 했던 나라들입니다. 부지런히 다녔지만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이 남았습니다. 평생을 바쳐도 다 못 다닐 정도로 넓은 지역이지만 힘이 닿는 한 열심히 다닐 계획입니다.”

◆스타기업을 일구다

허 원장은 2002년 한약재 생산 회사인 옴니허브를 설립한 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옴니허브는 모든 것을 뜻하는 ‘Omni’와 약초를 의미하는 ‘Hub’의 합성어. 이름에서 신뢰할 수 있는 한약재를 공급하려는 허 원장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옴니허브의 전신은 허 원장이 약초 기행에서 얻은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사이트인 ‘옴니허브 닷컴’이다. 올바른 약재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허 원장이 옴니허브 닷컴에 올린 글은 한의학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좋은 약재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옴니허브를 설립했다. 현재 옴니허브는 500여 종의 한약재를 생산해 전국 3천여 곳의 한의원과 한방병원 등에 공급하고 있다.

허 원장이 옴니허브를 통해 한약재를 생산`공급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쓰는 부분은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다. 그는 믿을 수 있는 한약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CCS(Clean Chain System)를 도입해 국내 1천여 농가와 계약 재배를 통해 약초를 생산하고 있다. “CCS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농가에서 약초가 생산되어 한의원에 들어오기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연결하는 시스템입니다. 한약재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일종의 한약재신뢰회복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약재에 대해서도 CCS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외국산 약재 의존도가 높은 만큼 CCS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 지점이 바로 외국산 약재라는 것. “한약재에 사용되는 약초의 상당 부분은 외국에서 들여옵니다.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은 약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외국산 약재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는 만큼 외국의 약초 재배 농가에도 CCS를 적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허 원장은 품질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약재의 표준화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약초는 파종 시기`재배 방법`건조 방법 등에 따라 성분이 달라집니다. 약재 표준화를 위해 재배 방법 등을 통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내외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옴니허브는 설립 10년 만에 매출 규모 200억원을 자랑하는 중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한의사 뿐 아니라 제약회사`약업사 등으로부터 약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옴니허브가 짧은 기간 한방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에 올라 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한방 분야에 초점을 맞춰 특화 시킨 점이 주효를 했습니다. 여기에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믿을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한 것이 관련업계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한방산업은 식품 등 다른 분야와의 연계를 통해 그 영역을 더욱 넓힐 수 있습니다. 옴니허브가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입니다.”

◆생활 한방에서 건강의 맥을 찾다

옴니허브는 한약재 뿐 아니라 귤피`당귀`자소엽`모과`오미자 등 70여 종의 한방차도 생산하고 있다. 또 전남 장흥에 한방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약초와 사람’이라는 문화관을 설립해 한방헬스케어 사업도 펼치고 있다.

허 원장은 생활 한방주의자다. 그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는 대학 동기와 ‘고정제’를 만들면서 치료 역할 외에 한의학의 또다른 분야를 개척해 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동의보감을 펴낸 이유와 맥이 닿아 있다. 허준은 비싼 약재를 구입할 형편이 못 되는 민초들을 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의 종류와 효능을 적은 동의보감을 저술했다. “양방에 비해 한방의 문턱은 높습니다.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죠. 현대 의학은 병이 발병했을 때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을 중시합니다. 한방차는 약재는 아닙니다. 하지만 꾸준히 마시다 보면 몸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고 병을 예방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손쉽게 마시고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한방차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한방차의 세계화에 도전

허 원장은 한방의 대중화와 함께 한방차의 세계화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옴니허브가 생산하는 대표 한방차인 귤피차는 현재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이세탄백화점에 납품되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일본 최고의 백화점에서 귤피차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것은 일본 차문화의 변화를 감지하고 틈새시장 공략에 나선 허 원장의 전략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녹차로 대변되던 일본 차 시장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녹차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홍차 등이 각광 받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이세탄백화점 차 코너에서 귤피차는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건강차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녹차가 빠져 나간 시장을 파고 든 것이 적중한 것 같습니다.”

그는 한방차의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 만큼 앞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라고 했다. “중국의 보이차와 일본의 녹차가 세계 차 시장을 장악한 것은 바로 종주성의 힘입니다. 한방차의 세계 진출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지만 종주성을 가진 한방차를 만들어 세계에 진출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초 주권으로 가는 도로 건설

허 원장은 자신이 하는 일을 도로 만드는 것에 비유했다. “한의학에서 약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침술을 제외하면 모두 약재를 이용해 치료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의사들도 약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자신에게 들어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한의사들이 약재를 바로 볼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약초 기행을 하게 되었고 옴니허브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허 원장은 자신이 구상하는 도로가 완성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다. 허 원장이 생각하는 도로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은 약초 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약초 자원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약초 자원을 주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종자 확보가 관건입니다. 국내 약초 종자 뿐 아니라 해외 약초 종자를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일을 할 계획입니다. 또 믿을 수 있는 약초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해외 생산기지 확보에도 주력할 생각입니다.” 약초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허 원장의 도로 공사는 한창 진행 중이다. 허 원장은 2010년 라오스에 30㏊(9만여 평)의 약초 생산기지를 확보해 약초를 생산하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도 약초를 생산하기 위해 시범 재배를 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출처 : 매일신문 2012.06.16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6679&yy=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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